제목 [홈페이지 개편 기념 리본(Re-Born) 특강] 출판창업자 전길원 원지현
작성자 센터지기 등록일 2019.02.22
지속가능한 출판을 위한 그들의 고군분투기

MBC ‘무한도전’ 관상특집에서 방송인 노홍철이 시민과 나눈 대화가 화제가 됐다. 조선시대에서 현재로 시간여행을 온 설정의 노홍철이 한 시민에게 “실례지만 직업이 뭐요?”라고 물으니 시민이 “회사원이요”라고 답했고 노홍철이 다시 “회사원이 뭐요?”라고 하니 시민이 “노비요”라고 답한 것이다. 예능에서의 짧은 문답이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다수 회사원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 그런 ‘노비’가 되길 거부하고 스스로 ‘주인’되길 자처한 출판창업자들이 있다. 비출판인과 출판인으로 배경은 다르지만 1인 출판사를 이끈다는 공통점을 지닌 전길원 리얼부커스 대표와 원지현 보라코끼리 대표가 지난 2월 14일 한겨레교육 누리집 개편기념 리본(Re-Born) 특강에서 예비 출판창업자들을 만났다.

출판의 본질은 지식과 정보 기반의 콘텐츠 생산



먼저 마이크를 잡은 전길원 대표는 출판이 사양산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스스로도 출판 산업이 정녕 사양산업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뛰어든 출판시장 은 전혀 사양산업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인간이라는 종 은 호기심과 탐구심 덩어리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종이 멸종되기 이전에는 매체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읽을 만한것의 수요는 영원히 계속 될 것”이라며 눈을 빛냈다. 출판시장에 대한 확고한 그의 신념이 엿보였다.그는 종이책 시장이 한동안 더 주류의 위치를 굳힐 거라고 예측했다. 최근 출판되고 있는 전자책과는 달리 종이책이 주는, 만지고 쓰다듬고 직접 넘기면서 읽는, 그 특유의 ‘물성’에서 오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서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

전길원 대표는 예비 출판창업자들에게 ‘독자에서 사업자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보통 출판업을 생각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는 독서 애호가인데 출판사는 규모가 크든 작든 그 핵심이 사업이라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책이라는 문화상품을 기획, 제작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 들어간 비용을 회수함으로써 그 다음 책을 만드는, ‘지속가능한 출판’을 지상명제로 생각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지속가능한 출판’을 위한 두 가지 포인트를 전길원 대표는 ‘자금계획’과 ‘롤모델 설정’으로 설명했다. 우선 ‘자금계획’의 경우 그는 “이제 막 출판을 시작하는 분들이 ‘세금이니 회계니 세무니 이런 거 잘 몰라요’라며 외면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 사람들은 1년도 못가서 망한다.”고 잘라 말했다. 기본 자금은 많든 적든 그 나름의 운용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사업하는 동안 언제 얼마가 들어가는지를 모르면 자금 유동성을 살릴 수 없다는 말이었다. “돈은 언제나 셀 구석이 많다”고 강조하는 그의 목소리는 한 명의 독서가에서 사업가로 전환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알려주는 듯했다.
다음으로 그가 꼽은 ‘롤모델 설정’은 그의 뼈아픈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너무 벌리지 마세요”라며 말문을 연 그의 표정은 한층 더 진지했다. 2016년부터 18년까지 17년을 제외하고 매년 3권씩 모두 6권을 출판했지만 2016년 책 중 성공한 것은 단 한 권이었다. 나머지 2권은 싹 망했다. 성공한 한 권은 지금 5쇄를 찍어 가고 있다. “그 흑역사가 아니었으면 저는 망했을 겁니다. 잘 안 된 책들은 제가 잘 모르는 분야였어요. 초심을 잃은 거죠. 평소 잘 보지도 않는 자기개발서를 판권이 적당히 나왔다는 이유로 산 것이 패착이었습니다. 1인 출판사의 경우는 창비나 문학동네 같은 대형출판사와는 다르게 모든 걸 혼자 해야 하는데 자신의 관심분야나 전문분야도 아닌 책을 택하게 되면 시장에서 외면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잘못을 예비 출판업자들이 범하지 않기 위해 “롤모델을 잘 선택하라”고 한 것이다. 자신이 관심을 두는 출판사들을 알라딘 등의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들이 출간하는 전문 분야의 트렌드를 한눈에 알 수 있어 롤모델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한겨레 출판창업학교를 만나다

다음으로 강단에 선 원지현 보라코끼리 대표는 전길원 대표의 제자다. 그는 한겨레 출판창업학교 1기 출신으로 2018년 4월 전길원 대표를 비롯한 출판창업학교의 다양한 선생님들 아래서 출판창업을 준비해 두 달 뒤인 6월 출판창업학교를 졸업하고 이틀 뒤 퇴사한 뒤 11월 첫 책 <촬영감독이 묻고 촬영감독이 답하다>를 출간했다. “따지고 보면 첫 출간한 지 3개월 반 밖에 안 됐다”며 입술을 뗀 그는 “그래서 말씀드리기에 모르는 게 많고, 조심스럽다. 다만 제가 말씀드릴 건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그 분투기”라며 열정에 찬 목소리로 한겨레 출판창업학교에 등록한 때부터의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다. “직장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직장 생활 내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윗사람에게 듣기 좋지 않은 말을 듣고 아랫사람에게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하지,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점을 보러갔는데 당장 때려 치라는 거였어요. 그 말에 마음이 동해 때려 치려 했지만 월급이란 게 또 뭔지. 우선 하고 싶던 출판 관련 교육을 찾아서 해보자는 마음에 알아보다가 한겨레 출판창업학교 공고를 보게 됐고 등록하게 됐죠.”
그는 “첫 수업 듣고 선 그만 두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사실 그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출판업을 하려고 했던 것도 영어 교재를 출판했던 출판사에서 근무를 오래했으니 그 경험으로 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교재와는 다른 단행본 중심의 출판 중심 수업 내용에 초기 투자비용도 1억이 든다는 말을 첫 수업에서 들으니 “난 못하겠다,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첫 수업과 두 번째 수업의 환불비용은 어차피 같으니 두 번째 수업까지만 듣고 환불받자고 생각하고 있는데, 두 번째 수업이 끝나고 한 수강생 동기가 출판사업자 등록을 했다고 SNS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어찌나 자랑을 하는지 원 대표도 회가 동해 바로 등록을 했는데 그때부터 기이한 열망에 휩싸였다. “부장이 뭔 말을 해도 ‘나 대푠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니까요(웃음).” 그 뒤로 로고도 만들고 재미가 붙은 원 대표는 출판창업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퇴사까지 했다. 그리고 3개월 뒤 첫 출판까지 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그러나 첫 출판 이후 원 대표가 승승장구를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출판 이전이 꽃길이었다면 출판 이후는 가시밭길이었다”고 했다. 1인 기업으로 홍보, 영업, 판매 등을 모두 혼자 담당했다. “회사 다닐 때 영업 사원들을 무시한 게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어요. ” 홍보를 위해 페이스북은 물론 인스타그램에 하루 반나절 이상을 투자해 그림을 그리고, 영화 서평을 쓰고, 알라딘·인터파크·예스24·교보문고 등과 공급율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주요 서점에 책을 집어넣은 후에는 직접 방문해 자신의 책이 어디 진열되어 있는지 점검하고 잘 보이지 않은 곳에 있는 땐 읍소해 위치를 바꾸기도 했다. 책 한 권을 더 팔려고 <씨네21>에 거금을 주고 광고를 싣기도 했고, 영화 관련 세미나들에서 책을 팔기도 했다. “6시간 앉아 있으면서 2권을 팔았다.
내 시급은 300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웃으며 말하는 그의 얼굴에선 힘든 기색을 찾기 어려웠다.

돈보다 중요한 것



“첫 출판을 하고 지금까지 3달반. 제 순수익은 한 달 70만원입니다.” 사실대로 이야기한다며 수입을 공개한 원 대표. 70만원은 다음 책 출판 비용을 마련하기는커녕 생활비도 안되는 금액이다. 때문에 원 대표는 출판 관련 외주를 받고 영어 강의를 나가며 출판업 외의 활동들로 밤을 새기 일쑤라고 했다.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원 대표는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감정이 직장을 다닐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강의를 마쳤다. “좋은 점을 뭐라고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는데요. 일단 제일 좋은 건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된다는 겁니다. 더 좋은 건 그렇게 늦게까지 자다가 문자 때문에 깨는 일입니다. ‘알라딘 2부 보내주세요, 교보문고 매장 10부 보내주세요’ 등등이 문자 내용인데 그 순간이 행복합니다. 정말 나는 직장하고 안 맞는 것 같아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은 다시 태어난다는 마음으로 꼭 한 번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박성환 <김창석 기자의 언론사입사준비 아카데미 120기> 수료생
사진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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